[제주도여행시즌투] #13 - 한라산 정상 백록담에 오르다 (한라산편 2탄)

2011. 9. 14. 14:42Lovely Jeju Island/Season2.(JUL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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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 한라산 정상 백록담에 오르다 (한라산편 2탄)

한라산 1950M 정상 백록담까지의 길고 긴 레이스는 다음의 13단계에 따른다.

1단계 - 의욕과다
정상탈환을 목표로 진달래밭휴게소까지 앞만보고 뛰어가다시피 오르기 시작

2단계 - 본격산행
숨이 조금씩 가파오르고 간간히 사진기를 들고 주변경관을 카메라에 담으며 오르고 있음.
걸음은 확연히 느려짐

3단계 - 원기보충
가방에서 비상식량 초콜렛을 섭취. 옆에서 양갱을 먹고 있는 아저씨가 부러움.

4단계 - 고행
이상하게 다리는 괜찮은데 숨이 너무 차서 내장이 튀어나올것 같은걸 극도의 집중력으로 참고있음.
자리에서 주저 않진 않았지만 나무를 벗삼아 30초간격으로 멈춰서 숨고르기를 반복하고 있음.
조만간 10초간격으로 줄어들것 같음.

5단계 - 자연동화
어느새 허리가 많이 앞으로 기울어져 있고 무릎위에 자연스럽게 손이 얹혀지며 들고 있던 카메라를 포기하고 주변의 나뭇가지를 머리채 쥐어잡듯 활용하고 있음.

6단계 - 오한
조금씩 어지럼증이 밀려오며 쉬어서 물을 먹는 횟수가 늘고 있음. 체온이 내려가는걸 느낌.

7단계 - 해탈
까마귀친구가 근처까지 와서 대화를 시도.
참 귀엽게 생겼는데 애니메이션에 왜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있는지 의문을 가짐.
평상하나가 나와서 첨으로 누워봄.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지도 모르겟다는 생각이 문득 듬.
경고판에 몇달전 이곳에서 사망자가 발생했다면서 무리한 산행은 삼가하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옴.

8단계 - 현실직시
숨이차서 턱턱거리는 소리가 온통 머릿속을 울리고 있음.
등산객 중 많은 이들이 나를 지나쳐 오르고 있음. 심지어 하산하는 등산객들도 보이기 시작.

9단계 - 재도약
진달래밭 휴게소가 1.2KM남은지점. 마지막 힘을 쥐어짜서 오르고 있음.
남은 시간상으로는 정상까지 가능할 것 같음.
휴게소에 먼저 도착한 일행들로부터 전화벨이 울림.
한시까지 내가 오르지 못한다면 개의치말고 정상으로 출발하라고 괜한 쿨한척 멘트를 날려봄.

10단계 - 진달래 휴게소
일행들과의 조우. 많은 등산객들이 정상을 앞에두고 충전의 시간을 누리고 있음.
싸가지고 간 주먹밥에 미소짓고, 일행들이 먼저 다 먹어버린 포도에 슬퍼하며...
잠시 손을 씻겠다며 화장실행. 그러나 이 곳이 고속도로 휴게소가 아님을 깨달음.
10분도 쉬지 못하고 정상을 향해!

11단계 - 몽유도원
진달래 휴게소를 출발해서 정상까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음.
추워서 옷을 입었고 비가 오지는 않았지만 비를 맞은 듯 축축해져 우비를 입었고
카메라 렌즈가 습기차서 가방에 넣었고 까마귀친구들을 또 만났고
바람이 몰아쳐서 계단에 바짝 몸을 낮추고 걸었고
안개인지 구름인지 자욱한 연기때문에 주변 경관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음.
이대로 바람에 날아 간다면 죽기전 5분가량은 하늘을 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음.

12단계 - 정상으로 향하는 마지막 계단
안개 구름 비 바람소리 까마귀 그리고 끊임없는 계단.
역시나 정상에 먼저 도착한 일행이 전화를 걸음.
지금 내가 있는 위치를 설명하니
지금 오르고 있는 그 계단이 정말 토할것 같이 끝없이 이어진다는 얘기만해줌.
구름위를 걷는 기분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는 구나라는 생각을 해봄.

13단계 - 백록담
정상탈환!!
비바람이 쉴세없이 몰아쳐대는 그 추운정상에서
한시간을 기다려준 일행이 눈에 들어옴. 백록담은 눈에 안들어옴.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렀을 도인같은 관리인이 눈에 들어옴. 백록담은 눈에 안들어옴.
서둘러 하산하는 등산객들이 눈에 들어옴. 백록담은 눈에 안들어옴.

 









정상위에 채 3분도 서있지도 못하고 내려와야했다.
관리인이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우리 일행에게 어서 하산하라고 다그쳤다.
정상위 갈림길에서 모두들 성판악 코스로 되돌아 내려갔는데 우린 계획대로 관음사 코스를 택했다.
마지막으로 뒤통수너머로 들렸던 관리인의 당부소리.
"지금 기상악화로 산길이 미끄러우니 성판악코스로 내려가세요!"

관음사코스는 안되냐며 되물었고,
우리 일행들을 쭉 훑어 본 그는 다리 풀린사람없다면 그 쪽으로 서둘러 내려가라는 말을 남겼다.
다행이다 싶어 재빨리 아무도 가지 않은 관음사 코스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그때까지 말짱했던 다리가 관음사 코스로 내려오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슬슬 풀리기 시작했다.
내 다리가 내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지 않다는 걸 눈치채기 시작했다.
바닥의 돌맹이들이 3D로 보이기 시작했다.

하산길의 관음사코스는 등반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렸고 약 1.5배는 더 힘들었다.
심지어 관음사코스는 하산길임에도 불구하고 초반에는 오르막길까지 등장한다.
이 길로 등반을 했으면 분명 정상까지 당도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To be continued...




백록담
백록담 by no4h 저작자 표시비영리

그날 보지못한 백록담은 누군가의 사진으로 대신한다.
힘들게 오른만큼 허무하긴 했지만
결과보다는 과정이 내게 남았으니 그것으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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