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 핀 코스모스도 아름답고. (코스모스는 가을에 피는 꽃이라고 하는건 잘못된 상식인가.)
어둠이 슬슬 밀려오면서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는데 그 와중에도 길에 핀 해바라기가 나의 발목을 잡는다. 고흐의 꽃.
제주 올레길 3코스의 마지막 마을에 들어서자 가로등이 켜진걸 보았다. 조바심이 나는 순간에도 자꾸 잠시 멈춰 셔터를 누른다. 고즈넉함에 취했는가보다.
이곳을 지나치다 할머니 한분을 만나서 3코스 종점인 표선 당케포구가 얼마나 남았는지를 여쭸다. 할머니께서는 분명 15분이라고 말씀하셨고 어두워진 하늘을 보면서 빨리뛰어가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여기 이 마을에서부터 표선 종점에 닿을때까지 무려 2시간 동안 달렸다.
달리다 보니 하천리의 배고픈다리가 나왔다. 왜 배고픈다리일까. 안내판을 읽어볼시간은 안되서 사진으로 찍고 또 달린다. 후에 찍은 사진을 보고 알았는데 고픈 배처럼 밑으로 쑥꺼진 다리라고 해서 그렇단다. 한라산에서부터 이곳 바다까지 흐르는 천미천의 꼬리 부분에 해당한다고 한다.
여기까지 3코스에서 찍은사진이다. 그 이후에는 완전히 해가 졌을 뿐더러 가로등 불빛을 만난것도 포구 근처까지 다와서 였다. 그리고 그 당시 카메라의 빳데리도 죽어버렸다. 종점에서 3코스 완주를 기념으로해서 한장찍지 못한것이 제일 아쉽지만 그곳은 언젠가 다시 찾게 될 4코스의 시작점이니 상관없다. 조만간 다시 갈꺼니까... To be continued...
뒷이야기
사실 이 배고픈 다리를 건너면서 부터가 난코스의 시작이었다. 왜냐하면 이곳을 지나쳐 얼마 못가서 밤이 시작됬기때문이다. 가로등이 없어 가시거리가 점점 좁혀져가는 가운데 저멀리 표선당케포구의 불빛을 보았다. 다와간다 조금만 더 힘을내자 스스로 위로하며 열심히 달려가다 표선의 백사장을 만났다. 어두워서 자세까지 낮춰가며 안내판을 읽어보니 바닷물이 들어왔을때는 위험하니 백사장으로 지나가지 말고 도로로 올라가서 건너 가라는 문구였다.
안내판을 발견하지 못했으면 위험할뻔했구나 싶어서 도로쪽을 향해 발을 돌렸는데 거기서부터 길을 잃었다. 아니 아에 길이 안보였다. 하나도 보이질 않았다. 불빛이 하나도 없고 앞으로 전진 할수록 깊은 숲풀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그 긴장감 넘치는 기분이란. 나침반은 없었지만, 손전등은 없었지만 오나전 감으로만 걸어갔는데 표선포구는 앞쪽에 있고 큰도로를 만날려면 오른쪽이니 나는 45도로 계속전진했다. 그러면 수학적개념에 따라 포구와 가까워지면서 큰도로를 만날수 있으니까.
걸으면 걸을수록 길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눈앞에 보이는건 어둠뿐이니 행여 내가 가는 지금 여기가 길이 아니더라도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하나도 보이지도 않으니뭐. 근데 왠걸 내의지가 한풀꺽이는 위기의 순간을 만났으니 나무들과 숲 풀속에 등장한 철창!!!
뒤를 돌아서 되돌아 갈까싶었는데 그러면 진짜 미아가될꺼같았다. 방향감각을 잃어버리면 안되니 뒤를 도는 행위는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철창 넘어로 가로로 좁은 길이 하나 나있고 그길따라 트럭이 보였다. 그 길로 나가면 분명 큰 도로와 연결되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철창을 넘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어렷을 적에 모험가가 되려면 담을 잘 넘어야 된다며 남에 집 담벼락을 넘었을때의 그 희열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지금은 아파트에서 살아서 그런 넘을 담이 없을 뿐더러 요즘 같은 세상엔 분명 누군가 신고를 할테지)
내 예상대로 그길따라 나가니 큰도로로 나왔다. 그리고 잠시 보지 못한 포구의 불빛을 다시 만났다. 시간을 확인했을때는 밤 열시가 다되가고 있었다. 이제는 숙소로 되돌아 가는 길이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교차로에있는 음식점에 들어가 마지막으로 길을 물었다. 3코스 종점의 위치와 되돌아 가는 버스편을 물었는데 같이 걱정을 해주시면서 얼른 뛰어가서 스템프찍고 다시 큰도로로 나와서 버스를 타라고 말씀하셨다. 조만간 막차가 끊길거라는 주의를 주시면서.
그렇게 힘들게 도착한 3코스의 종점 올레사무소에는 아무도 없었다. 뭐 예상한 상황이지만 쓸쓸이 닫힌 문을 확인하고 바깥에 내놓여있는 올레스템프를 혼자 찍으면서 느낀 그 씁쓸함이란. 이 스템프가 뭔지. 이거 찍으려고 달려왔나 싶기도 하고. 잘 보이지도 않아서 사무소 찾는데도 여러번 물어봐야했는데 돌아서면서 올레길관계자를 향한 메세지를(그것도 종이가 없어서 휴지에 다가 적은 후) 스템프가 담겨있던 통에 넣고 돌아섰다.
야간 올레꾼을 위해 불빛좀 설치해달라고 호소했는데 진짜 제주 올레길은 해가 지고나서 걷는 것은 위험하고 고생을 하게 되니 주의를 요한다.
그렇게 해서 이날 하루만에 걸은 올레길은 30km정도...
긴장이 풀어지나 싶었는데 다시 막차를 향해 또 냅다 뛰었다. 버스정류장까지 1km는 더 걸은 듯하다. 그것도 아슬아슬하게 떠나는 버스를 잡아탔는데 마지막 전력질주를 버스기사님이 발견하셔서 다행이었다.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면서 주인할머니한테 전화를 드렸는데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내가 안돌아와서 걱정을 하고계셨었다. 버스정류장까지 마중나와주신 할아버지한테 등짝을 한대 맞는 것으로 죄송스러움의 댓가를 치뤄야만했다. 죄송해요!!
쓰다보니 소설이 되버렸구만.
여하간 무사히 올레길코스 체험은 마지막날 긴여운을 남기고 막을 내렸다.
그날은 참 잠이 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