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인도를 다녀온지는 4년하고도 3개월이 지났고 사실 작년에 여행기를 예전의 네이버 블로그에 적었었는데(물론 완결을 못했다) 여기 티스토리로 이사오면서 옮겨볼까한다. 태국여행기를 마무리지으면서 이젠 인도여행기 차례라는 생각을 몇주전부터 했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드뎌 이 야심한 밤 잠못이룬채 첫 발을 내딛는다.
여행기를 쓰기전에 약간의 설명이 필요할꺼 같아서 프롤로그포스팅을 해두려고 하는데 사실 작년에 썼던 여행기의 프롤로그가 있어서 이건 그 프롤로그의 프롤로그쯤 될듯 싶다.
그 당시에 썼던 프롤로그.
내가 새삼스럽게 인도에 간 이야기의 흔적을 3년이 지난 지금 이곳에 남기게 된 이유는 역시나 즉흥적인 사건이 하나 생겨서이다. 그러나 그건 강물 위에 파도가 친 것은 아니고 그 이전부터 잔잔히 바다는 흘러가고 있었다.
외관은 점점 젊어지고 있으나 내적으로는 죽음을 맞이하고 잇는 벤자민 버튼은 치매가 오기전 그녀와의 이야기를 일기장에 기록한다. 바로 이 벤자민 버튼의 이야기가 내 마음의 바다에 파도를 일으킨 사건이다. 다행히도 나는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라 신체와 정신이 비교적 균등하게 늙고 있다. 나는 요즘 인간의 기억력의 한계는 얼마나 되는가에 자문한다.
며칠 전 회사 앞에서 강도 사건이 터졌다. 우리 회사 주변 환경은 일명 강남의 가리봉동으로 밤일하시는 여자분들이 밀집해 있는 원룸 촌이 즐비하다. 강도는 혼자 사는 여자의 집을 털러 들어갔다가 우리 회사 CCTV에 몽타주가 잡혔다. 형사 몇몇 분이 회사에 와서 녹화된 그 당시 CCTV를 확인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피해자 진술이랑 인상착의가 다르네~’
한 시간도 흐르지 않은 과거의 기억도 인간은 정확히 캐치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동물인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가능하다면 자신의 기억력에 대한 믿음이 피사의 사탑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사실 나는 보통의 사람들보다 기억력이 저조한 장애가 있다. (내 스스로 장애를 인정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장애를 얻는다. 다만 그것의 표출 정도와 강도에 따라서 우리가 흔히 정상인과 장애인을 구분 짓고 그 두 부류를 다르게 생각할 뿐이다.) 기억력 저조를 인지하면 할수록 혹은 의식하면 할수록 그 증상이 더 심해지는 듯하다. 내 과거를 들춰서 그 원인을 분석해보면 이러하다. (물론 이 과거는 내 기억력에 의존한 것이 아닌 제3자의 과거로 어느 정도 검증된 이야기임을 미리 밝혀둔다.)
내 스스로가 몸을 씻는 것이 불가능했던 아주 어린 시절 엄마는 나를 씻기다가 내가 미끄러져 욕실바닥에 머리를 대차게 부딪혔다는데 피도 나지 않고 외상이 전혀 없었단다. 또 다른 이유는 어렸을 적 나는 몇 차례 발작을 일으킨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놀란 엄마는 나를 들쳐 업고 병원으로 달려갔는데 그 당시 모 의사는 이렇게 판명을 내렸다.
‘계속 증상이 지속되면 간질환자가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한 가지 기억하는 것은 내가 마지막 발작을 일으킨 다섯 살 때 뇌파검사를 받던 순간이다. 나는 엄마 무릎에 누워서 자고 있다가 간호사의 호명에 안으로 들어갔다. 간호사 여러 명이 나를 에워 싸고 내 머리에 이상한 껌딱지를 붙이기 시작했다.
‘검사하는 동안 그냥 푹 자면 되’
검사가 끝나고 왜 잠을 자지 않았냐고 하길래 나는 잠을 잤다고 적당히 뻥을 쳤는데 뇌파로 환자가 수면 중인지 아닌지 구분이 가능한걸 나중에 커서 알게 되었다. 원인을 찾을 수 없는 내 증상은 한의원에서 쇼부를 친다. 그 당시 모 한의사는 이렇게 판명을 내렸다.
‘몸이 약해서 고열을 일시적으로 견뎌내지 못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그 이후로 나는 일년에 두 번 봄, 가을로 한약을 먹기 시작했고 엄마의 지극 정성으로 지금까지 정상인들 속에서 티 안 나게 살고 있다. 나는 그 후로 두 번 다시 발작을 하지 않았지만 엄마는 나로 인해 심장병을 얻었다.
프랑스의 영웅 나폴레옹도, 이탈리아의 대문호 단테도, 그리고 베컴의 둘째 아들도 간질증상이 있었다고 한다. 누구든 일생에 한 번의 간질발작을 경험할 가능성은 100명중 여섯 내지 아홉 명으로 상당히 높은 편이다. 우리아이가 간질발작을 한다면 부디 놀라지 말고 한약을 먹이십시오. 누군가에게 내 경험담이 희망이 될 수 도 있겠지… 아무튼 나의 기억력 장애는 이 두 가지 과거력이 원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기록을 하는 것에 익숙하다.
여러 가지 생각이나 아이디어들을 기록하고 그리고 싶은 그림이 있으면 그때그때 대충 스케치를 해놓고 나중에 다시 그리기도 한다. 약속이나 그날에 있었던 일들은 다이어리에 기록해 두는데 다이어리를 집에서 놓고 외출하는 날은 굉장히 불안해 지기도 한다. 심각한 다이어리 증후군일지도 모른다. 순간적인 암기는 잘 외워지는데 이상하게 지나간 것들은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미래의 나를 위해 기록한다.
다시 인도 이야기로 돌아가서… 내 인도 이야기는 오차 없는 백프로 리얼리티 논픽션이 될 수는 없을 거다. 인간의 아름다운 만행인 기억의 조작은 기억으로 남는 그 순간부터 시작이다. 그렇지만 이 픽션 속에 깃든 나의 논픽션 경험담은 분명 내가 겪은 일들로만 이어질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가 ‘기억’하는 한계 속에서 이겠지만… 당시에 내가 썼던 일기장과 찍어둔 사진들이 내 기억력을 도와 줄거라 믿는다.
나의 인도여행은 델리를 시작으로 아그라, 오르차, 바라나시, 쉼라, 마날리, 맥그로드간즈를 찍고 다시 델리로 돌아와서 끝이 난다. 여행기의 방식은 단막단막 에피소드들로 구성하려 한다. 내게는 너무 오래 전 일이라 당시 상황을 그대로 전달하는 형식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앞으로 기록하는 인도이야기는 철저히 미래의 나 자신을 위한 이야기다.
내 소중한 추억이 어리석은 내 기억력조작으로 점점 흐릿해지고 변모해지기전에…
- 아살리아
이 글을 썼을 당시의 마음과 지금 비교한다면 크게 달라진것 없다. 역시나 여행기를 쓰는 가장 큰 이유는 내 자신을 위한것이겠고, 한가지 변한 것이 있다면 이 여행기를 보게되는 제 3자에 대한 것일텐데 의외로 네이버에서 여행기를 적을 당시 꾸준히 내 여행기를 봐주던 아주 극소수의 관객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결국엔 누군가 내 이야기를 보게된다는 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게 될텐데 중요한건 내 여행기는 어떤 정보제공을 위한 것으로 활용될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냥 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인도도착후 첫날묵었던 숙소 천장에 달려있던 팬. 너무더워 천장만 바라봤었다.
요즘 블로그에 여행기를 올리는 블로거들이 꽤많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이뤄지는 걸텐데 여행기를 찾는 이들은 주로 어디에 관점이 쏠려 있는 것일까에 대해 자문할때가 있다.
나는 명성높은 유적지를 관람하는 이야기보다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얽힌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 그래서 주로 찾아보는 것들도 그런 류의 포스팅을 올리는 사람들이거나 아니면 아예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본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쓰는 이야기도 어디가 볼만하더라 어디를 어떻게가면된다라는 것이 아닌 그땐 그사람을 만났지 그 당시에 이런사건이 있었어 라는 식이 될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한번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당시를 회상하고 기쁨에 젖을 수 있을테고...
혹시나 나와 같은 뜻을 품고 있는 자가 내 이야기를 보고 흥미를 느끼게 된다면 그 또한 기쁨이 되겠지.